'잠'과 만난 미술관…관람객도 조각상도 모두 '쿨쿨'

입력 2022-07-24 17:30   수정 2022-07-25 00:13

‘잠’과 ‘미술관’은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다. 미술 작품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사람에겐 여지없이 ‘교양 없다’는 핀잔이 쏟아질 테니. 하지만 서울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전시회 ‘나의 잠’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돼지, 너구리 등 동물 탈을 쓰고 조는 사람들이다. 관람객들이 누울 수 있는 침대와 나른한 피아노 음악, 아로마 디퓨저까지…. 숙면에 도움을 주는 ‘장치’가 전시장 곳곳에 깔려 있다.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잠이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 19명이 참여해 회화와 조각, 설치미술, 영상 등으로 저마다 잠을 표현했다. 전시를 총감독한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는 24일 “치열한 경쟁 시대에 잠은 ‘줄여야 하는 시간’ ‘불필요한 시간’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이 사는 데 잠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며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잠의 특성을 감안해 각자 갖고 있는 ‘1인칭의 세계’를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나귀와 양, 쥐, 곰, 돼지, 너구리 등 동물의 탈을 하나씩 쓰고 졸고 있는 사람들은 진짜가 아니다. 스테인리스 레진 스펀지 등으로 제작한 설치미술이다. 김홍석 작가는 작품의 이름을 ‘침묵의 공동체’(사진)라고 정했다. 작품 속 등장인물에게는 화물차 운전자, 영화배우, 경비원 등 직업을 하나씩 붙였다. 양 모양의 탈을 쓴 태권도 사범 옆에는 “주로 6~15세 어린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루 여섯 시간 퍼포먼스에 참여하면서 하루에 90달러를 받습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세워뒀다. 김 작가는 “잠드는 것도, 쉬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아닌 경계의 영역 어디쯤 있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 개인의 경험을 투영한 작품들도 곳곳에 배치됐다. 이성은 작가의 작품이 그렇다. 카메라와 거울, 모니터로 이뤄진 작품에 눈을 갖다대면 마치 유체이탈하듯이 2~3초 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작가의 삶에서 잠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가 설계했던 삶을 헝클어놓은 것도, 새로운 기회를 준 것도 모두 잠이었다. 그는 멀쩡하게 행동하다가 갑자기 잠에 빠져드는 ‘기면증’을 앓고 있는 탓에 공학도(연세대 기계공학)의 길을 접고 예술로 방향을 틀었다. 이 작가는 “기면증 환자에겐 자각몽과 유체이탈이 일상이고, 잠과 삶의 경계가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민수 작가는 낮과 밤이 뒤바뀐 사람들의 삶을 조명했다. 아버지가 신문사 윤전실에서 일했던 것에 착안해 만든 영상 ‘신기술’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윤전기의 소음을 담았다. 그 옆에는 컨베이어벨트 롤러 위에서 옮겨지는 택배, 스티로폼 부스러기에 파묻힌 모터 등을 통해 배달업체, 물류창고 등에서 일했던 오 작가의 경험을 담았다.

전시는 9월 12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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